
암세포 내부에 가해지는 압력이 갑자기 커지면 암이 다른 장기로 더 잘 퍼지는 상태로 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가 받는 압력의 크기뿐 아니라 압력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연구진은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해 이를 측정하는 센서를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12일 나노의학 연구단 천진우 단장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전영욱 교수 공동 연구팀이 MRI로 종양 내부 압력을 측정하는 초소형 센서 ‘엠큐브(M3)’를 개발해 지난달 2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암이 자라면서 종양 내부에는 압력이 쌓인다. 좁은 공간에서 암세포가 계속 증식하면서 주변 세포와 조직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물리적 압력이 암세포의 전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살아있는 종양 내부의 압력을 직접 측정하기는 어려웠다.
연구진은 젤리처럼 말랑한 물질에 자성을 띠는 나노 입자를 넣어 지름 약 70㎛(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크기의 센서를 만들었다. 압력을 받아 센서가 눌리면 내부 물 분자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이를 MRI 신호로 감지하는 원리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종양의 어느 부위에 얼마나 강한 압력이 가해지는지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연구진은 이 센서를 활용해 실험실에서 배양한 입체 종양 조직과 암세포를 이식한 생쥐의 종양을 관찰했다. 그 결과 암세포에 가해지는 압력이 서서히 증가할 때는 세포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 체계가 작동했다. 반면 압력이 갑자기 커지면 방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암세포 사이의 결합이 느슨해지면서 이동과 주변 조직 침투에 유리한 상태로 변했다. 암세포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기 쉬운 성질을 갖게 되는 현상이다. 암세포가 받는 압력의 총량이나 최대 압력보다 압력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는 데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천진우 단장은 “이번 연구는 살아 있는 종양의 보이지 않는 힘을 MRI로 추적하고, 압력의 변화가 암세포의 전이 성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밝혀낸 것”이라며 “향후 암 전이뿐 아니라 조직 재생, 염증 등 다양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